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날의 이별은 사고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항상 엄마 몰래 눈으로만 흘기던 동네 치킨집에 처음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들어갔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날따라 유독 화장실을 자주 가셨다 아마도 눈물을 감추려 그러셨던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날 엄마와 함께 놀이동산을 갔고, 나는 그날

많이도 울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처음 가 본 놀이동산이라는 곳은 참 시끄럽고, 사람도 많고, 더웠기 때문에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의 구렛나루는 모두 땀에 젖어있었지만 모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런 곳이 낯설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계속 웃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입에 솜사탕이 들어오는지 음료수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놀던 중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는데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순간 암흑-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느낌.

엄습해오는 불안감은 순식간에 나의 머리를 꽉 틀어막는 듯한 공포감으로 바뀌었고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고, 그중 엄마를 닮은 여자를 몇 명 보았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나는 눈물에 젖어 뭉쳐있던 속눈썹을 작은 손으로 비벼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마침 사람들 사이로 남색의 카라티의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 남자를 보며 나를 가리켰다.

아마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남자는 나에게 어디론가 같이 가자고 했다, 엄마를 찾으러,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울었다.

하지만 키가 큰 어른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타이르고 설득하려고만 들었고

나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남자의 손을 잡고 따라 가야만 했다.

나는 남자를 따라 어떤 하얀색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 안에는 검은색의 뚱뚱한 모니터들이 빛을 내고 있었고 콩나물같이 생긴 길쭉한 검은색 마이크 두 대가 대가리를 쭉 내밀고 있었다.

남자는 우뚝 서서 모니터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 뒤에 얇은 쿠션이 깔린 등받이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울음이 멈추지 않아 코가 시렵고 가슴이 먹먹했다.

남자의 굴곡진 옆얼굴 표면 위로 하얗게 모니터의 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무릎을 굽혀 내게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곤 난감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최대한 상냥하게 내게 물었다.

이름은 무엇이며, 몇 살이고, 어머니의 이름을.

정신이 없어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나는 울먹이면서도 대답은 꽤 잘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그새 잠에 들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문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난감한 목소리가 역력했다.

아마도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통화 내용을 다 듣진 못했지만 몇몇 중요한 키워드는 들었다

남자는 퇴근시간이 다가왔고,

퇴근 후 친구와 약속이 있었고,

나는 골칫덩이가 되어 있었다.

통화를 끝마친 남자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내 눈을 피했다

나를 친절로 대해주던 남자의 표정은 점점 바뀌고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울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소 직원이 찾아왔고, 나는 임시 보호소로 가게 되었다

보호소 직원의 손을 잡고 흰 부스를 나가는 중 뒤를 돌아봤을때

남색 유니폼의 남자는, 부랴부랴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놀이동산에 가지 못했다.

나는 보호소 직원이 타고 온 흰색 아반떼를 타고 놀이동산을 빠져나와 보호소 방향으로 향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일렬로 길게 늘어선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길고 긴 회색 도로를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긴 도로를 지나고 작은 동네를 올라서 가다 보니, 드디어 가로등 몇 개 없는 으슥한 산 중턱에 조금 낡은 하얀색 컨테이너식 하우스 건물이 작고 네모난 창문으로 은은하게 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함께 온 보호소 직원은 승용차의 전조등을 밝히며 능숙하게 건물 앞에 차를 세운 후 시동을 껐다.

우리 앞엔 중년의 여자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함게 온 직원은 차에서 내려, 마중 나와있던 여자와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후 내가 타있던 좌석 문을 조심스레 열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길의 의미를 알아채고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상황,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은 다짜고짜 나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부모 잃은 어린아이를 향한 의무적인 연민일 뿐 사랑은 없었다.

임시 보호소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는 며칠 뒤 보육원으로 옮겨졌고

그렇게 영영 어머니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많이 흘러 지금은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센터의 선생님들은 종종 내 동생들에게 “천밤만 자고 일어나면..” 이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그 천 번의 밤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다.

동생들을 위한 것일까, 보호소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한 것일까,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남아있는 나의 희미한 기다림을 위한 것일까.

오늘도 눈을 감으며 어머니의 온기를 추억하다, 소리 없이 베개를 적셨다.

2024.4.26 明珍

🪟환기, 창문을 열어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