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일과를 마친 경민이는 서둘러서 집으로 향한다, 딱히 집에 무언가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거나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다.

경민이는 그저 집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걸음을 재촉한다. 집에 도착한 경민이의 모습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의 대화를 통해 짐작이 가능한데, 우선 원래의 계획은 보통 이럴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먼저 씻고, 그다음에 밥을 먹고, 그다음 잘 준비를 하며 쉬다가 잠에 드는 것.

하지만 보통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우선 잠깐 쉬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침대던 소파던 푹신한 곳을 찾아 엉덩이를 붙였다가, 슬금슬금 등을 붙였다가,

조금씩 졸음을 느끼고, ‘이대로 잠들면 안 된다’는 생각과 ‘잠깐 눈만 붙였다가 떼자’라는 본인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하며 결국 눈을 붙여버리던가.

또는 자신의 의지로, 아님 가끔 운이 좋게 가족들의 도움으로 원래 예정이었던 씻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무사히 씻는 단계로 진입하게 된 경민이는 보통 이때부터 연락이 두절되어서 이후에 밥을 먹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쉬는 동안 잠잠하다가 언제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정이 될 즈음에 슬그머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민이만의 작은 루틴인 것이다.

매일 그렇게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경민이는 이때도 보통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뉜다.

괴물 같은 활력을 되찾아 나타나서 나의 하루에 남은 최후의 기력을 소모 시키거나, 아니면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기 직전, 그 와중에 언제나 양치질은 죽었다 깨어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알람을 맞추지 왜 내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이빨 건강의 책임을 내게 전가하기 위해, 몇 시에 깨워달라고 한다던지의 목적으로 전화를 한다.

그래서 항상 이 시간 즈음 전화가 울리면 나는 맹세코 가뭄에 콩 나는 비율로 가끔은 자는 척을 할까 고민을 한다. 그래도 보통은 결국 전화를 받고, 예상한 대로 경민의 이빨 건강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거나, 풀 충전이 되어 나타난 경민이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감당하다 함께 잠에 든다.

2024. 5. 24 明珍

🪟환기, 창문을 열어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