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태우지 않는 나의 옷장이 담배 냄새로 가득 차게 됐던 때가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주 갔다는 재즈카페를 알게 되어서 갔던 날, 우연히 카페 안에 있던 책장에서 한국어로 쓰여있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라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그리고 “상실의 시대”를 어렵게 한 권 읽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마땅히 만날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간간이 그곳에 들러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책의 제목은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라는 어느 하루키의 한국 팬이 그의 글 속 등장하는 수많은 술에 대해 다룬 에세이였는데, 전부 읽겠다고 다짐을 하고서 몇 차례 지나갈 때마다 잠깐씩 들러서 그날 기분에 따라 음료를 한 잔씩 시켜놓고, 해가며 전부 읽었다./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편안한 곳이었다. 내부에서 흡연이 가능한 가게라는 점이 개인적으로 유일한 문턱이랄까, 나같이 담배의 냄새조차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각오가 필요한 곳이다.

이곳에 앉아있으면 다양한 유형의 하루키 팬들을 만나게 된다, 젊은 커플에서부터 중절모를 쓰고 있는 연배가 하루키와 비슷해 보이는 아저씨, 그리고 어느새 내 옆으로 후줄근한 흰 티의 슬리퍼 차림의 젊은 남자가 앉아 다리를 꼬고서는 담뱃불을 붙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펼친다, 나는 몰래 그를 흘깃 훔쳐 보고서 내가 읽고 있는 책에 그 책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내심 반가움을 느낀다. 이토록 은밀한 감정을 느껴보니 하루키를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만 같았다.

40대의 하루키가, 그도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이 낡고 뻑뻑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와 앉아, 익숙하게 커피를 한잔 시키고서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있었을 이 카페에서 그의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덮으며..

마지막 문장, 오래된 도서관의 지하실 책상 위에 켜져있던 초를 입으로 불어 끌때, 그 바람 소리가 명확하게 내 귀에 들리며 동시에 어두워졌고, 마음속에 사진 한장이 남았다. “높은 벽들로 둘러싸여 있는, 긴 강물이 마을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고 외뿔의 단각수들이 좌우로 어깨뼈를 들썩이며 걸어 다니는, 그 풍경 속에 오래된 꿈들이 모여있는 작은 도서관이 있는” 그 마을의 사진이..

한 거의 2주간? 완전히 빠져서 읽고 있던 장편소설의 마지막 한글자를 읽고 난 뒤에, 마치 결승선을 막 통과한 마라톤 선수 처럼, 쌓였던 피로와 함께 허탈인지 성취감인지 모를 모호한 감정을 느끼며, 바로 멈추지 못하고 나아가고 있던 관성에 여전히 발을 구르며 방황했다.

유독 그렇게 진한 여운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 뒤 결말을 받아들이고 다시한번 지난 페이지를 뒤적이며 내용을 복기한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한번 정말로 책이 끝이 났음을 받아들인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끝이 난 뒤에는 많은 것이 남는다.

이 이야기가 내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지 바로 명확하게 말 할 수 있을만큼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뭐랄까 다시한번 신비로운 꿈을 꾸고싶은 어른들에게 추천 해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매일 마시던 하이볼 대신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 나가야지.

2024.5.17 明珍

🪟환기, 창문을 열어주는 마음으로-